어린이집 평가인증 때문에···물 한모금 못 마신 아이의 사연

작성자
sajwndfl
작성일
2019-09-30 11:10
조회
22
일부 아이에겐 "평가인증 기간동안 등원 말아 달라"
학부모 "화나지만 아이 맡길 데 없으니 받아들여야"
평가기관 "단기간 '졸속' 준비로 평가 잘 받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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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 구로구에 사는 김윤지(가명ㆍ35)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지난달 하루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김씨의 아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찾더니 벌컥벌컥 마셨다. 온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사람 같았다. 김씨가 아이에게 왜 이렇게 물을 마시냐고 묻자 “어린이집에서 빨대컵을 쓰지 못하게 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빨대컵은 윗부분이 막힌 컵에 빨대가 꽂혀 있는 형태로, 어린이용으로 제작된다. 김씨의 아이는 아직 어려서 빨대컵이 없이 혼자서 물을 흘리지 않고는 잘 마시지 못한다. 이 때문에 어린이집 등원 때마다 빨대컵을 가방에 넣어서 보냈는데, 아이 말대로 이날은 빨대컵에 전혀 사용 흔적이 없었다.

화가 난 김씨가 어린이집과 학부모들을 통해 알아보니 해당 어린이집이 ‘어린이집 평가 기간’이라 빨대컵을 사용하고 바로 가방에 넣지 않으면 점수가 깎여, 아예 빨대컵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빨대컵의 빨대가 뾰족해 안전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씨는 “빨대컵이 없으면 물을 제대로 마실 수 없는 아이인데, 안전상 이유로 아예 사용 금지시켰다는 게 말이 되나”라며 “빨대컵으로 안전하게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관리를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지난 6월부터 아이들의 보육권을 향상시키는 차원에서 모든 어린이집에 대한 평가제가 의무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어린이집 내에서 발생한 사건ㆍ사고가 사회 문제화되면서 일부 어린이집만 적용되던 평가인증제가 전국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일부 어린이집에서는 여전히 평가 점수를 잘 받는 것에만 중점을 두고, 정작 아이들의 안전과 권리가 더 침해되는 행동을 한다는 지적이 학부모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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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평가 절차. [한국보육진흥원]


어린이집 학부모 바카라사이트 커뮤니티에 따르면 평가인증 기간에 아예 아이를 등원시키지 말라는 요구를 하는 어린이집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금 소란스럽거나 활달한 아이의 경우 관리가 어려울 수 있어 평가 점수가 깎이는 것이 우려된다는 이유다. 또 일부 어린이집은 각 반에 맞는 유아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평가 기간에만 3세반 아이를 2세반 아이로 둔갑시키는 등 ‘행정 껴맞추기’를 하기도 한다. 갑작스럽게 자기 반이 바뀐 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어린이집 교사와 원장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어린이집 평가는 다양한 기준으로 이뤄지지만, 어린이집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현장평가다. 한국보육진흥원의 담당자가 온종일 해당 어린이집에 관찰자로 상주하며 평가 지표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원장이나 교사를 상대로 면담을 한다. 현장평가가 언제 진행될지는 각 어린이집에 월말에 통보되는데, 몇 주차에 방문할지만 밝힐 뿐 정확히 어떤 날짜에 방문하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부 어린이집은 현장평가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주에는 갑작스럽게 아이를 등원시키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거나 빨대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식으로 ‘졸속’ 평가 대비에 나선다. 관련 서류를 갑작스럽게 만들기 위해 때아닌 야근을 해야 하는 어린이집 교사들도 많다. 한 학부모는 “선생님들이 평가 인증 준비 때문에 예민해지면 우리 아이들만 더 어려워진다”라며 “이래저래 눈치 볼 일만 많아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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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평가 지표 및 평가 등급에 따른 기준. [한국보육진흥원]


학부모 입장에서는 화가 나는 일이지만, 어린이집에 계속 아이를 맡겨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 관악구의 한 어린이집에 아들을 맡긴 학부모 김동운(가명ㆍ38)씨는 “어린이집에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사실상 아이를 맡길 대안이 없는 부모 입장에서는 최대한 어린이집에 맞춰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평가 인증을 진행하는 한국보육진흥원 측은 “졸속으로 평가에 대비한 곳을 걸러내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보육진흥원 관계자는 “평가에 맞게 운영하기 위해 노력한 어린이집들은 평가인증 기간이 와도 더 바빠진다거나 어려워진다거나 하지 않는다”며 “소홀히 운영하다가 갑작스럽게 바카라사이트 인증을 받게 되는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단순히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현상만을 보는 게 아니라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 면담, 다양한 서류 검토 등을 통해 문제가 있는 곳은 낮은 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어린이집 행정에 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보육원 관계자는 “어린이집 평가 기간에 자체점검 보고서를 작성할 때 학부모들이 자체점검 위원회에 들어갈 수 있다”며 “그 기간에 학부모들께서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주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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